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관계와 언어Miscellaneous 2023. 7. 23. 09:49
얼마전 티비를 보다가 KBS의 홍김동전이라는 프로그램에서 학생이 고민을 이야기하고 출연진들이 이에대해 이야기해보며 조언해주는 장면을 봤다. 여학생의 고민은 썸을타고있는 남학생이 자기를 좋아한다 했지만 당장 사귀지는 않겠다고 해서 이 썸을 어떻게 정리하면 좋을지였다. 출연진들 대부분 '우리 관계가 뭔지 명확하게 정리하자고 해야한다'는 식으로 조언했는데, 홍진경씨는 '굳이 관계를 깔끔하게 정리해야하느냐'라고 이야기했다. 방송에서는 홍진경씨의 말에 대해 비주류적인 말로 웃고 넘기는것 같았지만 나는 그 말이 일리있어 보이기도 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들었다. 썸이라는게, 사람사이의 호감이라는게, 굳이 어떤 관계 즉 어떤 단어로 정리가 되어야만 하는가?
가만 보면 사람사이의 관계라는게 이를 표현하는 어떤 단어들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 것 같기도 하다. 사실 관계라는건 이미 있는거고 단어는 이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지만 방송에 나왔던 학생이 그랬듯 사람들은 '우리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'어떤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는 사이가 되고싶어 하는 것 같고 그렇게 되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.
어렸을 때 장보드리야르의 '시뮬라크르와 시뮬라시옹'이라는 책을 읽은적이 있다. 실재가 아닌 존재가 더 실재처럼 인식되는 현상을 이야기 하는 개념이었는데, 이 관계에 대한 상황이 딱 그러한 상황인 것 같았다. 사실 어떤 관계를 표현하는 단어, 언어라는건 사람사이의 관계 그 자체가 아니다. 관계는 이미 실재하는 것이고 언어는 그를 표현하는 것 뿐인데 우리는 어쩌면 썸, 남자친구, 남, 친구와 같은 단어들에 영향을 받아서 진짜 사람과의 관계를 그 언어에 끼워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. 홍진경씨의 말처럼 우리는 굳이 어떤 사람간의 관계를 언어상으로 명확하게 할 수 있어야 하는가? 어떤 관계를 표현하는 단어에 상관없이 사람을 있는 그대로의 관계로 두면 안되는가? 하는 생각이 들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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